글로벌 반도체 기술 및 산업 전망 2023

한국IR협의회 김경민 애널리스트의 ‘글로벌 반도체 기술 및 산업 전망 2023’ 칼럼을 공유 드립니다.

반도체 업황은 혹독한 겨울이다. 전통적 수요의 견인차로 꼽히던, PC와 스마트폰의 수요가 부진하다. 이는 반도체 수출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반도체 수출은 2021년 5월에서 2022년 9월까지 17개월 연속 100억 달러를 기록하다가 2022년 10월부터 100억 달러를 밑돌기 시작했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은 2023년에 전년 대비 1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수출이 감소하는 이유는 수출에 영향을 끼치는 지표 중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적어도 2023년 1분기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업계 전체적으로 설비 투자 축소 및 감산 등으로 공급량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즉, P(Price)와 Q(Quantity) 중에서 P와 Q가 모두 하락하거나 감소하는 상황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무력 충돌, 코로나 발발과 엔데믹 전환,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등 이벤트가 3년간 이어지며 반도체 업종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전통적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방법론이 통하지 않는다. 의사 결정에 따른 결과의 편차가 크다. 과거에는 중국으로 반도체 장비를 판매하는 것을 리스크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미국산 장비를 대체하며 중국으로 반도체 장비를 판매하는 기업들이 고마진 혜택을 누리고 있다. 삼성전자향 매출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IPO 당시에 시선을 끌지 못했던 반도체 소/부/장 기업이 이제는 해외 매출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주목받는다. 개별 반도체 기업을 평가할 때, 가장 화두가 되는 것은 중국을 포함한 해외 고객사 포트폴리오의 다변화 여부이다.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 크고, 전략적 정답지의 성격이 모호해지자, 반도체 업종 내의 관심사는 그다지 미래 지향적이지 않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반도체 기업들은 차세대 기술에 관한 관심보다는 오히려 현재 환경의 불확실성을 보면서 리스크를 관리하며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분위기다.

얼마 전에 끝난 CES 2023을 살펴보더라도, 샛별처럼 빛나는 최첨단 기술이 전면에 등장하기보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주목받았다. 모빌리티 기업 중 일부 기업은 Level 3 자율주행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 개발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기업은 Level 2+ 수준의 기술을 선보였다.

이에 따라 모빌리티 기업들의 콘퍼런스 현장에서는 오히려 Level 3~5 기술이 언제쯤 구현 가능한지 묻는 질문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모빌리티 기업들은 라이다 센서 없이 카메라 센서만으로 자율주행 Level 3을 달성할 수 없다고 답변하기도 했고, 도심형 로보택시의 자율주행보다 고속도로 주행 차량의 자율주행이 더 빠를 것이라 답변하기도 했다. 이런 답변은 업계 관계자들이 모르던 비밀이 아니다. 자율주행 기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다. 이처럼, 반도체 업계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세계관에 발을 딛고 있다.

반도체 업황의 겨울은 언제 끝나는 걸까? 반도체 업황은 정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일까? 중국 리오프닝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관찰하며 미래를 예측해 본다면, 세상을 뒤흔든 일련의 부정적인 이벤트(코로나, 전쟁, 무역 분쟁)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와 차량용(자율주행용) 반도체 수요, 그리고 산업용(로봇) 반도체 수요는 여전히 탄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인공지능, 차량용, 산업용 반도체 수요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PC나 스마트폰보다 경기 민감도가 의외로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차량용 및 산업용 반도체의 경우 전방 산업에서 완제품(완성차, 로봇)의 교체 주기가 길다 보니 PC나 스마트폰용 반도체 대비 롱테일 비즈니스의 특성을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의 반도체 기업 퀄컴의 2022년 자동차 관련 사업 매출은 약 13억 달러 수준이지만, design-win 파이프라인은 이보다 20배 이상 수준에 해당하는 300억 달러이다.

현실이 이러다 보니 퀄컴뿐만 아니라 엔비디아, 소니와 같은 기업들도 기존에 전통적으로 영위하던 사업의 성과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주식 투자자들을 비롯한 자본시장 참여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위주로 홍보와 투자자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한다. CES 2023 콘퍼런스에서 소니 CEO가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소니 TV나 오디오 제품이 아니라 ‘소니의 카메라용 반도체를 장착한 나노 위성’ 프로젝트였다. 콘퍼런스 후반부에서 가장 많은 발표 시간이 할애된 제품은 소니-혼다 모빌리티의 새로운 콘셉트카 '아필라'였다. 레스토랑 코스요리에서 전채요리, 수프, 샐러드가 빠지고 스테이크와 디저트만 대접하는 느낌이다. 소니 CEO는 마치 이렇게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봐요. 투자자들과 참관객들에게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해봤자, 다들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핵심에 대해서만 얘기합시다.”

그러한 관점에서 투자자들의 관심과 온기가 느껴지는 또 다른 분야는 인공지능 분야이다. 엔비디아가 2023년 1월 초 셀사이드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인공지능에서 반도체 수요를 견인하는 분야는 3가지이다, (1) 자연어 처리, (2) 추천 시스템, (3) 생성 인공지능(Generative AI)이다. 그중에서 생성 인공지능이란 말이 가장 낯설지만, OpenAI에서 학습한 초거대 언어 모델 ChatGPT를 통해 급속하게 대중에 전파되고 있다.

ChatGPT는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이다. 구글 검색이나 네이버 검색과 유사하다. 그러나, 특정 질문에 대해 자세하고 정교하게 답변한다. “미·중 무역 분쟁 전후의 반도체 업황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IPO 분야로 이직하려는데 어떻게 준비하면 되나요?”라는 질문에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고 친절하게 답변한다.

ChatGPT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OpenAI라는 비상장 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9년에 10억 달러를 OpenAI에 투자했다. OpenAI가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비용을 감당하고, 더 다양한 종류의 언어로 영어만큼의 고품질 챗봇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추가적인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ChatGPT 서비스 강화를 위해 추가로 OpenAI에 투자할까? 이 질문을 ChatGPT에게 던지면, ChatGPT는 약 100개의 단어로 답변한다. 재미있는 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추가 투자하든, 하지 않든, 그 어떤 경우에도 들어맞는 내용의 답변이 제시된다는 점이다. ChatGPT는 무서우리만큼 똑똑하다.

자율주행 기술과 인공지능 서비스 ChatGPT가 반도체 업종에 관한 관심을 끌어모으는 가운데,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반도체 업황은 2023년 2분기를 기점으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말 기준으로 높았던 재고가 어느 정도 소진된다는 점, 2020년 이후 2년 동안 수요 부진을 기록했던 스마트폰 시장에서 교체 주기가 도래했다는 점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반도체 수요에서는 사이클이 여전히 중요하다. 스마트폰 시장도 사이클이 존재하기 때문에 바닥이 있으면 회복도 있다. 특히 스마트폰은 PC나 TV보다 교체 주기가 짧다. 사이클 바닥 탈출의 기대감이 존재하는 이유다.

스마트폰의 수요 회복이 기대되는 가운데 2023년 반도체 업종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저전력(Lower power) 구현과 비용 절감이다. 반도체 제조사의 비용 절감 노력은 소재, 부품, 장비 국산화 기업에 기회다. 해외 소재, 부품, 장비 공급사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고 한국 반도체 고객사의 지근거리(至近距離)에서 서비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저전력 키워드는 절연막 소재의 변화(High-K)와 화합물 소재 웨이퍼로 만들어진 전력 반도체로 압축된다. 반도체의 전방 산업 시장의 중심축이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데이터 센터와 모빌리티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전력 효율이 우수한 반도체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반도체 업황이 비록 겨울이지만, 얼어붙은 땅속에서도 반도체 기술의 진화는 이처럼 계속된다.



현) CFA 애널리스트 (반도체/ICT)

  • 2020년 매경이코노미 선정 반도체·장비 베스트 애널리스트 1위
  • 2021년 한경비즈니스 선정 반도체 베스트 애널리스트 1위
  • 반도체 입문서 [반도체 애널리스트의 리서치 습관] 출간
  • KB증권, 대신증권, 하나증권, 한국거래소 산하 한국IR협의회